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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형평] 왜 진주인가?

◀ANC▶
MBC경남 연중 보도기획 [다시 형평]
순서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최초의 반차별 인권운동으로
평가받는 형평운동이
왜 진주에서 시작됐는지를 짚어봅니다.

서윤식 기자.

◀VCR▶

1905년 경남서부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진주교회를 찾았습니다.

1909년까지 이 교회에선
백정과 비백정 교인들은 서로 다른 예배소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해 부임한 라이얼 목사는
"하느님 앞에서 어떠한 차별도
있어선 안된다"며
백정들과 함께 예배를 볼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비백정 교인들은
"우리의 예절과 풍속에 따라 백정들과 같이
예배를 볼 수 없다”며 반발합니다.

선교사들의 끈질긴 설득과
백정 교인들의 양보에
비백정 교인들이 마음을 열었고
그해 8월 1일 마침내 진주 최초로
백정*비백정 교인이 함께
예배보는 것이 실현됐습니다.

◀INT▶조헌규 진주교회 장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차별을 받을 수 없다는 인권을 눈뜨게 해줬다.)

이처럼 인간 평등 사상을 다시 일깨운
동석 예배 사건을 비롯한
진주의 다양한 역사적 경험은
진주에서 형평운동이 시작된 배경이 됐습니다.

(반투명 C/G 스크롤)
1862년 진주농민항쟁의 저항 정신은
근대 진주 역사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동학이 내건 백정 해방과
갑오경장을 통한 신분제의 공식 해체.

1900년대에 이미 호적 등재 등
신분 철폐 운동에 나섰던 백정들의
실패와 좌절.

그것은 '진주만의 역사'였습니다.

진주 백정들의 투쟁과 자각,
사회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

그 정점이라 할 진주의 3.1 운동은
형평사 창립의 결정적인 동력이 됩니다.

◀INT▶
김중섭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진주에는 아주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그것은 뭐냐면 기독교가 들어와서 백정들에게 평등사상을 전파했다거나 또는 3.1 운동이 일어나서 3.1 운동의 아주 활발한 사회운동이 일어났다거나 이런 과정에서 형평운동도 시작한겁니다)


이후 차별 철폐를 넘어 보편적 인권*평등운동,
사회개혁운동으로 발전한 형평사는
그러나 지도부의 분열과
일제의 탄압에 쇠락하다
1935년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왜 진주인가? "라는 물음에
진주의 역사가 화답했다면
"왜 다시 형평인가?"라는 물음은
지금 우리 사회 앞에 놓여 있습니다.

MBC NEWS 서윤식입니다.

◀END▶
서윤식
거제시, 통영시, 고성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