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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경남_HOTcilp데스크(TV)

창원산단 기획1]기계산업의 요람..반세기의 애환

◀ 앵 커 ▶
창원국가산업단지가
올해로 지정 50주년을 맞았습니다.

창원국가산단은 경남을 넘어
우리나라 기계산업을 주도해 왔는데요,

MBC경남은 창원국가산단 50주년을 맞아
국가산단 등 경남의 산업화를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기획뉴스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 순서로,
창원국가산단 반세기의 애환을
부정석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 리포트 ▶
마땅한 중화학 공업시설이 없던 1970년대

창원국가산업단지는 1974년,
기계산업 중심의 창원종합기계공업기지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지금의 두대동과 외동,
가음정동과 남산동 일대가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지정됐습니다.

◀ SYNC ▶대한뉴스(1974년 4월 20일)
\"(대통령께서는) 기계 공업단지를 세우게 된
것은 선인들의 슬기를 오늘에 되살리고 국력의 상징인 중화학공업을 발전시킨다는 면에서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창원국가산단의 상징은
기름때 묻은 작업복이었습니다.

부산*울산을 비롯해 전국에서 온 노동자들은
한 달에 고작 하루이틀만 쉬면서
매일 10시간 넘게 일을 했습니다.

◀ INT ▶장계성/1980년대 창원국가산단 근로자
\"기본적으로 일주일에 철야를 몇 번씩 하고 그랬죠 그때는 지금처럼 노동시간에 대한 그게(제한이) 없으니까 급하면 하루 걸러서 처리하기도 하고 그랬죠\"

덕분에 기계공업을 포함한 중화학 공업이
전 세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급성장했습니다.

공단 조성 당시 생산액은 15억 원이었지만
2011년엔 50조 원,
지난해엔 60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 INT ▶배은희 전 창원국가산단본부장*창원산단 이주민
\"(창원국가산단을) 우려하는 그런 걱정을 그런게 더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이게 개발되기 때문에 도시화되면 더 잘 살수 있겠다 하는 그런 막연한 기대감도 갖고 있었습니다\"

경남 제조업의 33%를 차지하는 창원국가산단은
80년대 들어 노동운동의 중심이 됩니다.

기업체엔 노동조합이 설립됐고,
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대투쟁 끝에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도 결성됐습니다.

저렴한 인건비와 기술력을 무기로 한
활황기를 지나 2천년대 들어
중국 제조업에 밀려 기계산업이 주춤해지면서
창원국가산단은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기존 기계공업에
지식기반서비스업이 채워지고 있고
노동자들을 대신해
로봇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 INT ▶박병규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장/
\"(미래 창원국가산단은)기술 인력이라든가 연구 인력 그리고 창업 기업들이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근무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되는 것이 필요하거든요\"

◀ st-up ▶
50년 전
24개 입주기업으로 출발한 창원국가산단.

이제는 2천 6백여 개 기업과
11만 6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미래 50년을 위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MBC NEWS 부정석입니다◀ END ▶
부정석
도교육청, 환경, 진해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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