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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경남_HOTcilp데스크(TV)

우리말 우리글 지킨 독립운동가 이우식 선생

◀ 앵 커 ▶
일제 강점기는 우리말과 글의
말살의 역사이기도 했는데,
고문과 투옥까지 당하면서 한글을 지켜낸
분들이 있습니다.

의령 출신의 이우식 선생도
그 가운데 한 분인데,
578돌 한글날을 맞아
경상국립대 국어국문과 학생들이
선생의 무덤을 찾아 뜻을 기렸습니다.

이준석 기자!
산길을 걸어 20~30분,

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 학생들과 교수가
의령문화원의 안내로 강의실 수업 대신
한 무덤을 찾아 절을 올립니다.

남저 이우식 선생의 무덤입니다.

여느 한자 비문과 달리
비석의 글은 모두 한글입니다.

한글학회 동지들이 세운 비석입니다.

◀ SYNC ▶김정대 경남대 명예교수(비문 낭독)
\"일제의 감옥에 갇혀 고초를 당하기도 했으니...지조와 성실 속에 살고 간 지라\"

경남에서도 큰 부자였던 이우식 선생은
의령의 3.1운동을 이끌고,
동향의 안희제 선생과 함께 백산상회를 만들어 임시정부 등에 자금을 댄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선생은 당시 중외일보를 설립한 언론인이었고,
마산의 원동상회를 운영한 경영인,
경남은행장을 지낸 금융인이기도 했습니다.

선생의 가장 큰 관심은
우리말 우리글을 지키는 것,

조선어학회 운영과 사전 편찬 비용을 도맡았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제에 붙잡혀
고문과 옥고를 치렀습니다.

일제 재판 기록에 따르면
선생은 당시 돈으로 사전 편찬에 1만 6천140원,
기관지 '한글' 발행에 1,050원을 댔습니다.

당시 서울 종로의 기와집 한 채가
3천 원 정도였습니다.

◀ INT ▶박용식 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우식 선생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이
당신의 재산을 민족어를 보존하는 데
다 투자하시고, 10여 년 동안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 INT ▶전영서 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이우식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 덕분에
저희 지금 우리말 잘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너무너무 감사하고...

조선어학회를 이끈 3인이었던 이우식 선생과
영화로 잘 알려진 말모이의 실제 인물인
이극로 선생, 안호상 선생은 모두
의령이 고향입니다.

국립 국어사전박물관을 의령에 짓자고
의령군이 정부에 요청한 이유입니다.

◀ INT ▶김복근
국립 국어사전박물관 건립 추진위 공동 대표
\"이 세 분의 얼을 기리고, 의령에서 우리말을 우리글을 바르게 지켜 나가기 위해서
국립 국어사전박물관 건립을...\"

한편 이우식 선생이 주로 활동하고
살았던 곳은 마산이었지만
지금은 '독립운동가 이우식 선생이
사셨던 곳'이라는 안내판만 남아 있습니다.

mbc뉴스 이준석입니다.
◀ END ▶
이준석